본문 바로가기

앤드류 로, <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 (신진오 회장님께서 발췌한 부분 정리)

책을 읽고 2020. 7. 26.



신진오 회장님 페이스북 담벼락 통해 알게된 책인 앤드류 로의 <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


신 회장님께서 6일에 걸쳐 (2020/06/29 ~ 2020/07/04) 36개의 글을 남겨 주셨다.




아래는 신진오 회장님께서 발췌하신 내용을, 내가 정리 및 소화하기 위해 그대로 옮겨 본다.


1.

적응적 시장가설(Adaptive Market Hypothesis)은 투자자들과 금융시장이 생물학적인 세계에서 움직인다는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생물학은 살아있는 유기체가 대상이다.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혁신하며, 또 재생산을 거듭하며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진화의 과정에 주목한다. 적응적 시장가설은 금융산업의 내적인 변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경쟁과 혁신, 그리고 진화를 거듭하는 생물학적 사고방식이 훨씬 더 유용하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2.

적응적 시장가설 하에서 '가격'은 때때로 정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공포와 탐욕 같은 감정적인 반응에 의해서 합리적인 수준을 이탈해 형성될 수도 있다.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른 적응적인 행동들이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합리적인 경제인을 가정하는 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적인 광기는 점차적으로 소멸되며 다시 대중의 지혜로 회귀해 간다. 효율적 시장가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일 뿐이다.


3.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금융시스템을 가진 미국이 어떻게 금융위기의 중심부가 됐을까? 가장 간단한 대답은 금융시장이 경제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고, 경제학의 법칙이 아닌 생물학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경쟁, 자연선택과 같은 어떤 종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금융산업의 발전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런 요소들의 핵심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4.

파생상품 가격의 움직임이 열역학 공식에 의해 설명될 수는 있겠지만, 금융시장은 물리학의 영역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간적인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가운데 한 명인 리처드 파인만은 이렇게 말했다. "전자가 감정을 가진다면 물리학이 얼마나 어려워질지 상상해보세요." 금융위기는 투자자, 펀드매니저, 정부의 규제담당자들이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금융경제학은 물리학보다 어려운 학문이다.


5.

프랭크 나이트라는 경제학자는 위험과 불확실성의 개념상 차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위험, 그러니까 '리스크'를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무작위성이라고 정의했다. 반대로 '불확실성'은 양적으로 측정이 불가능한 무작위성으로 표현한다. 카지노의 룰렛, 블랙잭 그리고 복권 같은 게임 등은 위험을 상징하는 사례가 되는 셈이다. 반면 태양계 밖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는 일이나 핵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 같은 주제들은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사례에 속할 것이다.


6.

위험이 존재하는 산업은 사업의 무작위성이 계산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의 힘에 의해서 시장참여자들이 서로 비슷한 전략을 취하게 되고 제품은 진부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초과이익은 소멸한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산업(완전히 새롭고 입증되지 않은 기술에 기반한 산업)은 무작위성을 계량화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과 비슷한 전략이나 비슷한 상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이런 불확실성은 시장 참여를 제한하여, 결과적으로 초과이익이 장기간 발생하도록 만든다.


7.

우리는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적이고자 노력하는 동물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세계를 사물과 사건을 통해 해석하지 않고, 사물과 사건의 연속된 결과로 해석한다.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는 우리의 능력은 세계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내러티브를 만드는 능력과 맞닿아 있다.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그럴듯한 내러티브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머릿속의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수학자가 아니라 문학비평가다.


8.

뇌에는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도 있다. 뇌의 예측에서 물리적인 행동을 수행하거나 금융시장에서 매도 혹은 매수 포지션을 취한다. 예측이 성공적이고 유용하다면 행동이나 투자 포지션을 지속할 것이다. 예측이 부정확한 것으로 드러나면 행동을 중단하고 미래 예상을 수정한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내러티브를 만들수록 더 옳은 선택이 될 것이다. 내러티브에 기댄 미래 예상은 큰 단점을 갖고 있다. 뇌는 무의식적으로 예상이 실제로 이뤄지게 행동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9.

교사가 학생에 대해서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면 그 학생은 다른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학업을 수행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반대로 교사가 학생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면 학생의 행실은 더 나빠진다. 교사의 기대가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자기충족적 예언을 만드는 것이다. 교사들은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우수하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성적이 좋고,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성적이 나쁜 것을 보면서,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10.

피그말리온 효과는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 우리 자신이 지어낸 내러티브가 행동으로 바뀜으로 인해 단지 내러티브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실이 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우리가 외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고, 여러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서로 다른 독립적 시각의 검증을 받지 않은 우리의 내러티브는 그것이 단지 논리적이고 스스로에게 설득력이 있다고 해서 현실에서도 들어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11.

똑똑하다는 것 혹은 현명하다는 것을 신경과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답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지능이란 좋은 내러티브를 만드는 능력이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내러티브가 좋은 내러티브다. 'X가 일어나면 그 다음엔 Y가 일어날 거야'라는 인과관계에 대한 가정이 내러티브라면, 이 인과관계가 현실에 부합한다면 좋은 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지능이란 현실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인 것이다


12.

진화론에 대한 흔한 오해 중에 하나는 진화를 '진보'와 혼동하는 것이다. 진화는 생물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 아니다. 진화를 일으키는 자연선택은 번식에 효과적이지 못한 열등한 종을 소모시키고 제거해나가는 과정이지 어떤 목적을 갖고 생물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 자연선택을 처음 배우는 생물학자들은 그것이 선택의 과정이 아니라 제거의 과정이라는 데 큰 충격을 받는다. 정답을 모르는 시행착오의 과정과 진화는 닮아있다.


13.

우리는 자연선택의 이중성을 보게 된다. 자연선택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존재를 남기는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생태계 변화에 취약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양성은 생명이 존재를 지속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같은 세대에 다양한 돌연변이가 존재해야만 환경 변화 속에서 생존의 기회를 이어나갈 수 있다. 돌연변이와 생물의 다양성은 환경 변화에 대한 일종의 보험계약 같이다. 생물종의 다양성은 강인한 생명력과 같은 개념이 된다.


14.

재무적인 행동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손실회피나 위험선호와 같은 성향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이기도 한다. 쌍둥이들의 포트폴리오를 비교한 연구결과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30% 정도를 유전적 요인이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주식투자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29%, 전체 자산에서 주식의 비중을 결정하는 데 32%, 포트폴리오 전체의 변동성에 있어서 38%를 유전적 요인이 결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15.

오랑우탄과 인간의 운명을 다르게 만든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이런 질문을 생각하고 궁금해하는 능력이다. 복잡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추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진화의 세계에서 인간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자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인류의 드라마틱한 증가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의 필요에 맞게 환경을 다룰 수 있는 기술 진보의 직접적 결과다. 상상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이런 기술들은 발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16.

진화의 과정은 아이디어의 생성과 발달에 관여하기도 한다. 아이디어는 유전자와 달리 추상적인 존재이지만, 유전 정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로 복제되면서 변화한다. 유전 정보와 아이디어의 진화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아이디어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해볼 수 있고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머릿속의 짧은 고민만으로 진화될 수 있다. 바로 '생각의 속도로 일어나는 진화'인 것이다.


17.

아이디어가 진화한다는 사실은 인류의 성공에 있어서 추상적인 사고와 언어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인간은 생각을 자기 혼자 고민하여 발전시킴은 물론 언어를 통해 타인과 교류함으로써 진화의 범위와 속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확대시킬 수 있었다. 인류의 수가 증가하게 되면서 아이디어는 새로운 정신적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인류는 좀 더 혁신적이 되었고, 혁신들은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문자와 인쇄술은 아이디어를 수백만의 서로 다른 환경에 노출시켰다.


18.

어떤 주장을 제시하고 재반박하는 과정들이 피곤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답이 무엇이냐고!"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를 정답으로 이끌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진화론의 자연선택은 유전자뿐만 아니라 내러티브에도 적용된다. 사실 이런 피곤하고 복잡한 학문 연구방식과 과학적 탐색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가 전 지구를 지배할 수 있는 기술과 문명을 갖게 된 것이다.


19.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은 비용보다 나은 효용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사이먼은 '만족하다(satisfy)'와 '충분하다(suffice)'라는 두 단어를 결합하여 '충족(satisficing)'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경제적 주체로서 개인은 완벽한 결과를 찾기 위해 초인적인 계산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계산 가능한 해답 중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사이먼은 이것을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고 불렀다.


20.

자연은 우리가 정확한 해답이나 최선의 행동을 택해서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진화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 자연은 오직 변화를 만들어내고 적합하지 못한 개체를 제거해내는 것, 다른 말로 하면 탄생과 죽음에 관여할 뿐이다. 우리의 적응적 행동은 이런 자연의 냉정함 하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생각의 속도로 발생하는 진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뇌를 진화시키고 수없이 많은 환경 변화 속에서 생존확률을 높이는 행동패턴들을 만들어낸다.


21.

적응적 시장가설 하에서 개인은 자신의 현재 휴리스틱이 충분히 좋은 선택을 이끄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한 결론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 끝에 얻어질 뿐이다. 과거 경험과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한 추측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에 따라 학습한다. 이런 피드백의 결과로 새로운 휴리스틱을 만들고 판단의 원칙을 정립하여 다양한 경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게 된다. 휴리스틱은 점진적으로 변화하면서 최적의 판단에 근접해 간다.


22.

적응적 시장가설을 이항선택모형으로 살펴보자. 날씨가 좋다면 계곡이, 비가 온다면 능선이 이상적인 서식지다. 날씨가 맑을 확률이 75%, 비가 올 확률이 25%일 때, 수학적으로 계곡을 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100% 계곡 또는 100% 능선을 선택하면 멸종을 면할 수 없다. 놀랍게도 계곡 75%, 능선 25%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를 '성장에 최적화된 휴리스틱'이라고 부른다. '확률대응' 방식이 멸종의 위험성을 줄여준다. 자연은 집중투자를 싫어한다.


23.

금융경제학에서는 전반적인 환경 변화의 리스크를 '체계적 위험(systematic risk)'이라고 부른다. 체계적 위험이 발생하면 구성원들이 모두 똑같이 행동하는 집단은 살아남기 힘들다. 체계적 위험 하에서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다 같이 택하는 것보다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확률적인 행동을 하는 구성원들이 있는 집단이 살아남으며, 일반적인 경우 환경 변화의 확률과 행동 변화의 확률을 일치시키는 확률대응이 가장 성공적인 전략이 된다.


24.

환경 내부에 독립적인 하위 환경에서는 결과가 달라진다. 독립된 환경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비체계적 위험'이라고 부른다. 어떤 제약회사 제품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자동차 회사의 주가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위험이 자산 고유의 요인에 의해 존재할 때, 이것이 바로 비체계적 위험이다. 이럴 경우 합리적 행동을 일관되게 택하면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에도 소멸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고 결국 가장 번창할 수 있었다.


25.

체계적 위험이 존재하는 환경 하에서는 개인에게는 비합리적인 확률대응에 따른 행동을 선택해 종족 전체가 멸종하는 일을 막는다. 체계적 위험은 진화론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다. 대멸종 기간에 살아남아 자손을 퍼트린 종들은 체계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이 능력 역시 후대로 이어졌다. 확률대응은 지금 당장의 생존확률을 높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도 못하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우리 행동의 일부가 되었다.


26.

효율적 시장가설에서 소비자는 완벽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최적의 소비를 행한다. 소비자는 과거에 대한 기억도 없다. 소비자의 행동은 '경로 독립적'이다. 적응적 시장가설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적당히 만족스러울 뿐이지 반드시 합리적이고 최적일 필요는 없다. 소비자의 선택은 과거 진화의 역사를 반영한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행동편향도 갖고 있으며,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휴리스틱도 갖고 있다. 소비자의 행동은 매우 '경로 의존적'이다.


27.

경제학자들은 '물리학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부를 수 있는 심리적 고통을 공유하고 있다. 물리학은 물리현상의 99%를 뉴턴의 3가지 운동법칙으로 설명하는데, 경제학자들은 99개의 법칙으로 경제현상의 3% 정도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학이 과학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학자들에게 이런 차이는 스스로를 너무 초라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경제학자들은 종종 물리학적 수식으로 자신의 빈약한 아이디어를 가리곤 한다. 경제학은 이론을 만드는 데에 집착하고 있다.


28.

여러 종류의 자산을 포트폴리오 안에 섞는다면 서로 중구난방인 비체계적 위험들이 포트폴리오 안에서 상쇄될 것이다. 이는 흔히 우리가 '집단 지성'이라고 부르는 현상과 같다.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 각자의 추측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충분히 많은 수의 추측이 모여서 평균을 내면 개인의 오판이 집단 내에서 서로 상쇄되어 보다 정확한 예측에 근접해 가는 현상 말이다. 샤프는 비체계적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29.

제레미 시겔의 주장은 단순하다. 1802년 이래 주식수익률이 채권수익률보다 항상 높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주식에 투자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라고 권해왔다. 보유기간이 늘어나면 변동성이 시간의 누적에 따라 상쇄되므로 채권에 비해 주식이 높은 수익을 내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케인즈는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다만 "단기적으로 당신이 죽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30.

전통적 투자 패러다임에서는 알파와 베타를 서로 분리된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액티브 매니저들은 알파가 유지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판단을 믿고 리스크를 과도하게 유동적으로 관리하고, 패시브 매니저들은 어차피 베타는 통제할 수 없다며 리스크를 전혀 관리하지 않는다. 인덱스 펀드 내미저들은 그 인덱스가 투자자들을 경악시키는 폭락세를 보여주더라도, 수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31.

알파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인덱스 펀드를 만들되, 목표한 변동성에 맞춰서 비중을 조절하는 동적인 인덱스 펀드를 생각해보자. 일정 기간 일정 수준의 변동성을 설정해두면, 인덱스 펀드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패시브 투자를 구사하다가 시장 변동성이 치솟으면 현금 비중을 늘려버린다. 반대로 일정 수준 이하로 변동성이 떨어지면 레버리지를 써서 투자하도록 설계할 수도 있다. 내리막길에서 속도가 빨라지면 브레이크를 밟고 오르막길에서 엑셀러레이터를 밟는다.


32.

내러티브는 어떤 현상을 추상적으로 묘사해 미래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다. 인간은 현실을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내러티브를 사용한다. 인간의 뇌는 어떤 내러티브를 수용한 뒤 내러티브에 일치하지 않는 현실은 무시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핑계까지 갖다붙이며 원래의 내러티브를 정당화한다. 잘못된 내러티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더 나은 내러티브, 그러니까 미래를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찾아서 받아들여야만 한다.


33.

경쟁적이고 무자비한 과학계에서 과학적 가설은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검증된다. 어떤 내러티브가 지속적으로 높은 예측 능력을 보이면, 가설은 점차 좋은 내러티브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이론(Theory)'이 된다. 이론이 확립되면 우리는 일정 수준의 자신감을 갖고 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 네오가 매트릭스를 벗어나는 빨간 약을 택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간 믿어왔던 내러티브를 부정하고 새로운 이론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34.

1975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SR-52는 블랙-숄즈 공식을 푸는 데 필요한 로그함수나 지수함수의 계산이 가능했다. 1977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아예 블랙-숄즈 공식 자체를 내장한 TI-59를 발표했다. 마이런 숄즈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지만, 블랙-숄즈 공식의 독점적 재산권은 인정받지 못했다. 나중에 숄즈는 대신 계산기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숄즈에게 계산기를 직접 구매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35.

복잡성은 사실 '무지함'과 같은 표현이다. 무언가가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은, 잘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적응적 시장가설 하에서 복잡성은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해결책은 단순하다. 우리가 좀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이 알수록 복잡성은 점점 사라진다. 그러나 적응적 시장가설은 복잡성의 2차적인 문제를 예견한다. 복잡성에 대한 이해의 편중과 이로 인한 충돌의 가능성이다.


36.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마이크로 들어가 다시 스피커로 나오고, 이것이 무한히 반복되면서 찢어질 듯한 소음으로 확대된다. 공학자들은 이를 '양의 피드백'이라고 부른다. '긍정적 피드백'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상호작용에 의해서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지고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날 때까지 피드백이 지속되는 것을 가리킨다. 반대로 공학자들에게 '음의 피드백'은 균형을 벗어나려는 서로 상반된 움직임이 상쇄되면서 다시 기존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120918

댓글